그 시절 서민의 낭만과 고난을 씁쓸하면서도 희망적인 해학으로 그려낸 단편 모음이다.
소박한 행복을 기대하고 어처구니 없는 실패가 와도 연민과 유머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사랑방에 모여 놀던 그때가 떠오른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지만, 살얼음 동치미 국수 한 사발 후루룩 먹고 ‘허허’ 웃다보면 또 내일이 살아지지 않겠는가.
사랑방 동치미 국수의 비밀 <닭>
“이 겨울에도 마을 앞 주막에서 국수를 누르게 되자부터 욱이네 사랑에서 일을 하던 젊은 축들도 이 국수에다 구미를 또 붙이게 되었다. 자정이 가까워 배가 출출하게 되면 국수에 구미가 버쩍 동해서 도시 일이 손에 당기지 않았다. 참다 참다 못해서
“제기랄 또 한 그릇씩 먹구 보지.”
낚시꾼의 지혜 <낚시질>
“조 군과 더불어 사귀어 오기 무릇 20여 년에, 그것도 거의 매일같이 마주 앉아 놀면서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하고 진심이라고 알게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왔지만 내가 낚시질을 나선다는 그 말을 듣고 반가워하는 그 표정은 실로 일찍이 그가 반가워하는 표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그런 반가운 표정이었다. 이렇게 반가운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그런 심정이 그 표현 속에 흔연히 서리어 있음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샐러리맨의 애환 <동태>
“아니아니 하면서 몇 잔 더 들었다고는 하나, 약주 되 반을 셋이서 나누고 이렇게 다리가 휘청거려 보기는 처음이다. 지푸라기로 지느러미 짬을 뀌어 손가락에다 감아쥔 두 마리의 동태가 휘청거리는 걸음 따라 손끝에서 곤두춤을 춘다.”
●계용묵(1904~1961) 소설가, 시인, 수필가, 기자, 기업가
1904년 평북 선천 출생. 어릴 때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921년 중동학교에서 염상섭,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이후 휘문고등보통학교, 도요(東洋)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했다. 1925년 ‘조선문단’에 ‘상환’으로 등단했고, 이후 1950년까지 약 45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최서방’ ‘백치 아다다’ ‘별을 헨다’ 등이 있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서울 성북구 정릉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평생 소외된 서민들의 미시적 삶에 주목하여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냈다.